대학교에 컴퓨터실이 사라져도 될까?

2009. 3. 30. 17:44, 과학, ITodlinuf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면, 대학교에 컴퓨터실이 필요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접근이 편리해야 한다. 학교 안에서만큼은 정보는 국력이 아닌 학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교 안에서 누구나 쉽게 컴퓨터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전공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다. 대학교 전공에 따라 전문적으로 다뤄지는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있다. 예를 들어, 캐드나 SPSS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탓에 학생 개개인이 장만하기란 불가능하다. 셋째, 모든 주변기기가 갖춰졌다. 하다못해 과제를 제출하려 해도 워드프로세서를 쓰는데, 프린터가 없는 학생은 학교 컴퓨터실에 있는 프린터를 이용해 출력할 수 있다.

맥, 윈도우 듀얼 부팅이 가능한 아이슬란드 대학교 컴퓨터실
image by Karl Gunnarsson. (c) Some rights reserved.

  대학교가 일반 학생을 위한 컴퓨터실을 마련하기 시작한 때는 인터넷 활성화와 때를 같이한다. 다시 말해, 갓 1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미국의 한 대학교가 10년 만에 교내 컴퓨터실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는 앞으로 3년에 걸쳐 학교 내 모든 공공 컴퓨터실을 폐쇄한다고 한다. 경제도 어려운데 경비를 절감하자는 취지다. 다음에 나타나는 그래프는 버지니아 대학교 측이 기숙사 거주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2007년에 조사한 자료다.

  위 그래프에 따르면 신입생 3,117명 중 3,113명은 개인용 컴퓨터가 있다고 응답한 반면, 나머지 4명은 없다고 대답했다. 99.9%와 0.1%다. 다음 그래프를 보자.

  3,113명 중 절대다수인 3058명이 랩탑 컴퓨터를 가졌으며 47명은 데스크탑 컴퓨터, 두 가지 모두 가진 학생 47명, 타블렛 PC를 가진 학생은 9명이었다. 버지니아 대학교 웹사이트에 가면 그래프가 더 있는데, 컴퓨터실 폐쇄를 결정하게 된 가장 큰 계기 중 하나는 아마도 위 두 그래프가 아니었나 싶다. 신입생 99%가 컴퓨터를 가졌으며 더군다나 들고 다닐 수 있는 랩탑 보유율도 98%에 달한다니, 운영비 절감이 절실한 학교 측에서는 이 데이터를 보고 쾌재를 불렀을 듯.

  버지니아 대학교는 대부분 학생에게 컴퓨터가 있으니 공공 컴퓨터를 없애고 차라리 절약한 돈으로 그 외 필요한 시설을 확충하자는 것이다. 2008년 조사한 바로는, 학생들이 컴퓨터실을 이용한 시간(651,900시간) 중 95%는 학생들 자신의 컴퓨터로 충분히 가능한 작업인 인터넷 이용 및 단순한 문서 읽기/작성에만 쓰였기 때문에, 컴퓨터실을 폐쇄하면 그만큼 학교 운영비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버지니아 대학교 결정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엔 무리가 있는 지적이다. 공공 컴퓨터실은 학과 건물마다 있는 전공 컴퓨터실과는 성격이 약간 다르기 때문이다. 1년 내내 드는 전기료며 컴퓨터 보수비용도 만만치가 않아서 이 학교는 현재 공공 컴퓨터실 1년 유지비로 우리 돈 약 4억 2천만 원을 쓴다고 한다.

  컴퓨터실을 폐쇄하자는 계획만 있을 뿐, 어느 정도 절약이 될 것이며 새 시설을 만들고 유지하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세워진 게 없다. 없어도 되는 시설이니 일단 폐쇄해서 돈이나 마련해보자는 생각일까?

당사자인 버지니아 대학교 학생들 불만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 운영체제가 달라 자신의 컴퓨터에서 설치할 수 없는 (전공) 소프트웨어에 대한 대책을 내달라.
- 만약 라이센스 문제가 해결돼서 설치가 가능하다고 해도 모든 학생의 컴퓨터가 듀얼 코어 CPU에 2GB 램 시스템은 아니다.
- 버지니아 대학교 무선 인터넷은 느리고 연결이 잘 안 된다.
- 매일 무거운 컴퓨터를 짊어지고 다녀야 하느냐.

그러나 이에 찬성하는 학생들도 꽤 있는 모양이다.

- 절감한 비용을 Wi-Fi 환경을 개선하는 데 사용할 수 있고, 라이센스 문제를 해결하고 건물 내 전원 소켓도 지금보다 훨씬 많이 설치할 수 있다.
- 페이스북 같은 쓸데없는 작업을 하면서 컴퓨터만 차지하는 사람들을 안 볼 수 있어 좋다.
- 99% 학생에게 컴퓨터가 있으므로 매우 합당한 조치다. 입학 전, 학교에서 모든 학생에게 개인용 컴퓨터를 가져 오라고 요구하는데도 1% 비보유자가 있다는 것은 컴퓨터 장만할 돈을 술 마시는 데 썼다는 얘기다.

  경제 불황을 맞아 버지니아 대학교 나름대로 자구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전 세계 고등 교육 기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앞으로 지켜봐야겠다. 얼마나 절약되며 학생들에게 어떤 다른 시설을 안겨줄지는 모르지만, 운영비가 목적이라면 차라리 우리나라 부산대학교처럼 화끈하게 교내에 쇼핑몰이나 복합문화공간이라도 건립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2kg이나 나가는 컴퓨터에 책가방까지 짊어지고 다닐 학생들을 생각하니 우선 불쌍한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론 장래 버지니아 대학교 학생들은 4년 동안 체력단련은 따로 할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컴퓨터를 매일 들고 다니는 학생이 얼마나 되는지도 조사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OE. 이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시는지 설문조사를 해볼까 하니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합니다. 목표 응답자 수는 100명. (_ _)


Source: Choronicle of Higher Education

왠지 관련있어 보이는 글

블로그에 직장생활을 언급해선 안 되는 이유
인터넷 스타되는 법 가르치는 유명 대학교
프랑스에선 돈만 있으면 어려운 숙제도 뚝딱
블로깅만 잘해도 장학금 받는 미국학생들
수십년 미리 가 본 인류의 미래생활


 

희한했나요? Oddly Enough에서 발행하는 글을 무료로 구독하세요. RSS 또는 이메일
트위터 안 써봤으면 말을 하지마세요. 엄~청 재미납니다. : ) Follow me!

CCL 이 저작물은 Creative Common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가 정한 조건하에서만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Oddly Enough를 구독하시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Oddly Enough 구독자 수

피드 주소   구글 리더   한RSS

트위터

이메일 구독 이메일로 받아보기
 

이메일 구독신청 방법

달력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여러분의 의견입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 2008 Oddly Enough.
Oddly Enough is powered by Tistory. Blog Design is based on 960 grid syst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