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직장생활을 언급해선 안 되는 이유

2009. 3. 26. 09:29, 과학, ITodlinuf

  몇 년 전에 사촌 동생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들렀다가 노파심으로 방명록에 비밀글을 남긴 적이 있다. 어떤 사진 밑에 쓴 글이 내 눈엔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여서였는데, 사진은 회사 동료들과 함께 찍은 일상 사진이었지만, 그 밑에는 회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한 글을 적어 놓았던 것이다. 내 기억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평가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사촌 동생에 대해 좋지 않은 견해를 가질만해 보여서 그 녀석에게 이런 공간에서 직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는 건 될 수 있으면 자제하는 게 어떻겠냐는 투의 충고를 해줬다.

  블로그나 기타 소셜 미디어 사이트에 직장 이야기를 적는 것에 대해 여러분은 평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내 입장을 말씀드리자면, 짐작하시다시피, 반대다. 그 이유는 지금 이 시각에 생각나서 적은 사소한 글로 말미암아 나중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설사 단 한 줄짜리 글이라 한들. 예전에도 몇 사례가 있었지만, 최근에 미국에서 이처럼 내가 우려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버클리 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 다니는 한 여학생이 세계적인 기업 시스코(Cisco)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자신이 맡게 된 일이 전공과 조금 동떨어진 부분이 있어 탐탁지 않게 여긴 나머지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나 지금 시스코로부터 합격통지 받았어! 이제 높은 봉급이랑 싫은 일을 하러 산호세까지 통근하는 것 중에 어떤 게 더 나은지 저울질해봐야겠는걸.
Cisco just offered me a job! Now I have to weigh the utility of a fatty paycheck against the daily commute to San Jose and hating the work.

  가까운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일종의 농담으로 볼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평소에 트위터상에서 'cisco'란 단어를 모니터링하던 시스코 직원 Tim Levad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아마도 시스코 직원이라는 자부심이 상당한 사람이든지 아니면 그녀에게 우회적으로 충고하기 위함이었는지 그가 이 글에 답을 남겼다.

당신이 그 일을 하길 원하는지 아닌지 그들(인사 담당자)은 매우 알고 싶을 거에요. 우리(시스코 직원들)는 웹이라는 것에 통달한 사람들이랍니다.
I'm sure they would love to know that you will hate the work. We here at Cisco are versed in the web.

  다소 친절하게 들리는 시스코 직원의 글은 여학생의 글보다 훨씬 큰 파급력을 가져 이를 주제로 한 글이 Reddit에도 올랐고, 테크크런치의 마이클 애링턴도 이것에 대해 트위터링하여 삽시간에 인터넷 밈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Reddit과 해당 글에 달린 댓글 수를 보면 알겠지만, 아마도 메인 화면에 그 글이 뜬 것으로 보인다. 다음 메인화면에 뜬 웬만한 글의 조회 수가 5만은 거뜬한데 하물며 Reddit같은 곳이야 말해 뭣하겠나. 적어도 10만 명은 읽어봤을 것이다.

  이 '일화'는 'cisco fatty'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퍼지고야 말았으며, 어떤 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예 ciscofatty.com이라는 도메인까지 만들었다. 의도는 알 수 없으나 일시적인 트래픽을 이용, 광고 수익을 노린 웹사이트로 판단된다.

  여하튼, 그 결과 이 여학생의 실명은 물론, 얼굴과 다니는 학교 등 개인정보가 수많은 사람에게 노출돼버렸다. 온 인터넷에 그녀의 정보가 까발려진 것이다. 현재 그녀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비공개로 돌려놓은 상태이며, 시스코 인턴 직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절했다. 그녀가 이 일과 관련해서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 따르면, 사실 시스코 인턴도 그녀가 간절히 원해서 지원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 시스코로부터 연락을 받고 나서 거절을 결심했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이 일이 터져버린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시스코가 이번 일로 그녀에게 취한 불이익은 전혀 없었다고 그녀가 직접 밝혔다.

  최초 발견자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마녀사냥'이 되고 말았다. 이 어린 학생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마당 연못에 조그만 돌을 던진 것뿐인데 다음날 쓰나미가 되어 돌아오다니. 물론 소셜미디어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돌을 던진 그녀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순 없다. 다행히 그녀도 이번 일로 어떤 교훈을 얻은 눈치다. 하마터면 백악관에 입성하지 못할 뻔한 존 파브로 사건도 이와 비슷한 유형의 사례다.

  백 년쯤 지나 '인터넷 史'라는 학문이라도 생겨 지금의 소셜 미디어에 대해 논한다면 그들은 어떤 평가를 할까. 이 일은 적절한 사용법을 모르는 사람들(우리) 탓에 벌어진 일이라 볼 수 있다. 당사자에겐 미안하지만, 이 사례가 앞으로 소셜 미디어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 훌륭한 밑거름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가 하루빨리 올바른 소셜 미디어 사용 습관을 터득했으면 한다. 그리고 직장에서 일어난 일을 블로그나 미투데이, 미니홈피 등 공개된 곳에 서슴없이 털어놓는 사람들에게 좋은 귀띔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좋은 소재를 제공해 주신 효민님께 감사 말씀을 드린다.

OE. 잠잠해져 가는 마당에 그녀의 사생활 및 개인정보를 드러낼 수 없어 이 여학생의 트위터, 블로그로 향하는 링크를 일부러 연결하지 않았다. 여러분의 양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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