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식 이름표기의 개선이 필요한 이유

2008. 8. 19. 15:05, 비지니스, 시사odlinuf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학창시절, 제 이름을 로마자로 어떻게 표기할까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주위에 동명이인이 없던 터라 나름대로 제 이름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정성스레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용하고 있는 표기가 되기까지는 서너 번의 수정이 필요했습니다. 우리 이름의 로자마 표기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글을 쓰려는 이유는, 한글이 대부분의 다른 언어와 달리 '받침'이라는 독특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제 이름의 가운데 글자에는 이 받침이 있습니다. 그것도 외국인들이 쉽게 발음할 수 있는 'ㄹ'이나 'ㄴ'이 아닌 ''이 버티고 있어 로마자 'k'의 사용이 불가피합니다. 이런 이유로 이름에 받침이 없거나, 있더라도 한글의 연음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이름을 가진 분들은 이 글에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가 앞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단지 이 것만은 아닙니다. 편의상 등장인물 두 명을 설정하겠습니다. 주연: 김덕용(본인), 엑스트라: 박지영. 물론 두 이름은 가명으로서 주인공의 이름을 읽으려면 제 이름과 비슷한 연음법칙을 거쳐야 합니다.

10년 전 어느 날, 외국인 친구 두 명(폴란드인)에게 제 이름(full name)을 가르쳐 줘야 했던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이름의 뒷글자만 부르게 했었지요. '덕용'이라는 이름을 잘 발음할 수 있을까 하고 최대한 똑똑히 한 자 한 자 알려주었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 가르쳐 주듯. "덕.용."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따라합니다. "더ㅋ.용." =_= 이번엔 두 글자를 붙여서 발음해줬습니다. "덕용" 혼란스러워 하며 따라합니다. "더..쿙" 그래도 잘 모르겠는지 로마철자로 써보랍니다. 고딕체로 예쁘게 써 줬습니다. 'Deok Yong'. 받침과 연음법칙을 설명할 수 없었던 저는 매우 답답했습니다. 그들이 제가 쓴 것을 읽었지만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k를 버리자'였습니다. 일단 'Deo Yong'을 써주고 발음하게 한 뒤, 'Deog Yong'을 읽어보게 했습니다. 그제서야 80% 정도 흡족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시험삼아 'Deogyong'을 써 보았습니다. 그들의 발음이 이 번엔 95%의 정확도를 나타냅니다. 만약 제 이름이 받침이 없는 'Ji Yeong Park'이었다면 그들은 한 번에 쉽게 발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 여권이나 신용카드를 만들 때 신청서에 자신의 이름을 로마자로 기입해야 합니다. 누가, 왜, 어떤 이유로 우리의 합쳐져 있는 이름을 마치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처럼 두동강내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이름은 '덕 용'이 아닌 '덕용'입니다. 로마자로 이름을 표기하는 것에는 어떤 규정도 없는 듯 저마다 표기방법도 가지각색입니다. 'Kim Deok Yong', 또는 하이픈을 써서 'Kim Deok-Yong'. 개중엔 현재 저처럼 'Kim Doekyong'으로 표기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관공서나 은행에 적어 내면 반드시 두동강이 나서 돌아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요. 관례이기 때문에? 관리 편의상? 혹시 제가 모르는 심오한 이유라도 있을까요? 아시는 분은 제게 가르침을.

사용자 삽입 이미지

image by lilit (flickr.com/photos/lilit)


외국에서 생활하며 'Deok Yong Kim'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다 보면 웃지 못할 일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만약 은행에 이와 같은 표기의 이름을 적어 낸다면 이후 은행으로부터 보내져 오는 우편물에는 'Deok Kim'이라고 인쇄되어져 오기 일쑤입니다. 'Yong'을 그들의 middle name으로 오해한 것이죠. 다음부터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Deokyong Kim'의 표기를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 미관상 좋지는 않지만, 어느 기관에서나 제대로 된 이름 대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가 그 것에 맞게 고쳐야 하지는 않을까요. 우리가 'Michael'이란 이름을 '마 이 클'이라고 표기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이픈을 넣으면 되지 않느냐. 물론 이렇게 하면 'Yong'이 middle name으로 취급되지는 않겠지만,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에 하이픈이 섞여 있다는 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거니와 외국인들이 우리의 이름을 재차 물어 볼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자로 표기된 이름은 한글이 아닌 이상 우리를 위한 이름이 아니라 외국인을 위한 표기입니다. 그들이 읽기 어렵다면 읽기 쉽게, 받아 들이기 쉽게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의 이름을 로마자로 표기할 때는 'Deokyong Kim'이나 'Jiyeong Kim'처럼 붙여서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저는 한글의 연음법칙도 우리 이름의 로마자식 표기에 적용시켰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이름에 받침이 있는 자의 터무니없는 주장일 수도 있지만) 즉,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이름을 우리처럼 '더굥 킴'으로 발음하도록 'Deogyong Kim'으로 표기하자는 것이지요. 제가 너무 앞서 나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이것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름 정보의 저장이나 교환이라는 측면에서 'Ji Yeong Kim'이 'Jiyeong Kim'보다 편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편리함에 묻혀 우리의 이름이 외국인들에 의해 잘못 읽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표음원칙, 구개음화, 자음동화 이런 거 잘 모릅니다. 단지 저는 제 이름이 외국인들로 하여금 '더굥 김'이라는 올바른 발음으로 거부감 없이 읽혀지기 바랄 뿐입니다.

참고. 국립국어원에서는 한글의 통일된 로마자 표기를 위해 로마자 변환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국립국어원측은 다음과 같이 표기원칙을 설명합니다. "인명은 성과 이름의 순으로 띄어 씁니다. 이름은 붙여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음절 사이에 붙임표(-)를 쓰는 것을 허용합니다. 또한 이름에서 일어나는 음운 변화는 표기에 반영하지 않으며, 성의 관습적인 표기를 인정합니다."

UPDATE (2008.8.20, 오후 9:58) lovedove님 말씀에 의하면 여권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여권을 갱신할 때 로마자로 표기한 이름을 붙여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여부를 묻는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lovedove님 댓글 참조바랍니다.



 

희한했나요? Oddly Enough에서 발행하는 글을 무료로 구독하세요. RSS 또는 이메일
트위터 안 써봤으면 말을 하지마세요. 엄~청 재미납니다. : ) Follow me!

CCL 이 저작물은 Creative Common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가 정한 조건하에서만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Oddly Enough를 구독하시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Oddly Enough 구독자 수

피드 주소   구글 리더   한RSS

트위터

이메일 구독 이메일로 받아보기
 

이메일 구독신청 방법

달력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여러분의 의견입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 2008 Oddly Enough.
Oddly Enough is powered by Tistory. Blog Design is based on 960 grid syst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