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서도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대한민국

2008.09.15 15:06, 비지니스, 시사odlinuf
위 사진과 본문의 내용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image by tokyogoat

최근들어 머리를 다듬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과거에는 약 한 달에 한 번 가던 미용실을 지금은 두 달이 가까워 지고 답답함이 최고조에 달하면 억지로 찾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게을러 진걸까요. -_-

그래서 지난 주 오랜 만에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새로 생긴 미용실을 찾았습니다. 미용실 이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겠지만, 아마도 우리나라 헤어 디자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유명 체인점일 겁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한 종업원이 처음 오셨냐고 친절히 묻습니다. 저를 접수대로 안내하더군요. 머리를 손질하러 왔다고 하니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달라고 합니다. 5년 전 같으면 아무런 거리낌없이 적어 줬을텐데, 제 인식에 변화가 생기고 난 다음부터는 항상 조심하고 있습니다. 적고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하니 점장 비슷하게 보이는 분께서 괜찮다고 대답해 주십니다.

기분 좋은 서비스를 받고 나서 계산대 앞에 섰습니다. 직원이 할인이 적용되는 카드사를 열거했고, 해당되는 카드가 없다고 하자 회원으로 등록하면 다음부턴 20%의 할인율을 적용받을 수 있다고 귀뜸해 주며 회원가입 양식지를 들이 밉니다. 어느새 펜은 제 손에 들려있습니다. 하지만...처음에 적기 싫다고 했던 전화번호 적는 난이 있습니다. 20% 할인이라니, 하는 수 없이 적었습니다. 좀 더 써내려가자 주민등록번호를 적는 난도 보입니다. 그 부분에서 망설임을 보이자 종업원이 가입서를 받아 대신 입력해 줄 수도 있고, 제가 집에 가서 미용실 홈페이지를 방문한 다음 입력해도 된다고 하길래 주민등록번호를 제외한 나머지 '개인정보'를 써 주고 나왔습니다.

2주 동안 그 사실을 잊고 지내다 조금 전 생각이 나 회원가입 마무리를 하려고 그 홈페이지를 들렀습니다. 회원가입 페이지에 친절하게도 이미 제가 적어 냈던 항목들이 입력되어 있더군요. 필수 입력사항으로 이름, 주민등록번호, 아이디, 비밀번호, 주소, 이메일, 휴대전화번호가 있습니다. 여기서 또다시 갈등이 생깁니다.

"주민등록번호와 집 주소를 입력할 것인가 말 것인가."

달라는 개인정보를 내어 주고 20%라는 경제적 이득을 챙길 수 있겠지만, 과연 내 정보가 동네 미용실에 갖다 바칠만큼 그렇게 하찮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의구심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그간 발생했던 기업들의 고객 신상정보 유출 사건들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절반 이상의 주민등록번호는 이미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는 것이지요. 잘난 '고객관리' 덕분에 말입니다. 아울러 개인정보 제공에 무덤덤해진 우리도 일말의 책임은 있습니다. 과거 저만 하더라도 일단은 가입하고 보자는 식이었기 때문에 개인정보가 유출되라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으니까요.

인터넷을 이용한 사업이 활발해 지기 시작할 무렵, 업체가 고객을 관리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주민등록번호였을 것입니다. 개개인마다 다른 이 13자리 숫자의 번호만큼 편리한 수단은 없었던 것이지요.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되기 위한 주민등록번호를 민간이 사용토록 묵인해 준 정부도 책임을 회피할 순 없습니다.

결국, 요사이 벌어지고 있는 개인정보유출 사건들은 정부-국민-기업의 무사안일 태도가 빚어 낸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I-PIN 도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13자리 숫자의 자릿 수가 늘어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주민등록번호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저는 경제적 이득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불과 몇 푼과 제 소중한 개인정보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혹시나 앞으로 그 미용실을 또 찾는다 하더라도 내가 받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그만큼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 이력서를 작성할 때 '자연스럽게' 적어야 하는 주민등록번호의 입력여부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할 것입니다.

읽어볼만한 글



 

희한했나요? Oddly Enough에서 발행하는 글을 무료로 구독하세요. RSS 또는 이메일
트위터 안 써봤으면 말을 하지마세요. 엄~청 재미납니다. : ) Follow me!

CCL 이 저작물은 Creative Common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가 정한 조건하에서만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 표시는 반드시 입력하세요.

Oddly Enough를 구독하시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Oddly Enough 구독자 수

피드 주소   구글 리더   한RSS

트위터

이메일 구독 이메일로 받아보기
 

이메일 구독신청 방법

달력

«   2018/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여러분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 2008 Oddly Enough.
Oddly Enough is powered by Tistory. Blog Design is based on 960 grid syst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