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아에 낚인 BBC와 가디언

2009. 5. 7. 17:00, 비지니스, 시사odlinuf

지난 3월 29일, 프랑스 출신 영화 음악의 거장 모리스 자르(Maurice Jarre)가 향년 8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가 참여했던 영화로는 '닥터 지바고', '아라비아의 로렌스', '인도로 가는 길' 등이 있으며, 이 세 영화로 아카데미상 작곡상을 받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음악가다. 당시 전 세계 언론은 부고란과 기사를 통해 그의 죽음을 애도했는데 가디언과 BBC 매거진, 그리고 일부 인도, 호주 언론이 위키피디아에 적힌 거짓 내용을 발췌해 기사에 인용했던 사실이 알려져 망신살이 뻗쳤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소개했던 적이 있어 거듭 얘기하지만, 위키피디아를 너무 신뢰해선 안 된다. 특히 자신의 신분이 기자라면. 굳이 하려거든 출처가 분명한 부분만을 인용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사는 22살 대학생 Shane Fitzgerald는 모리스 자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이것을 자신이 진행 중이던 세계화 연구에 대한 자료로 이용하고자 한가지 실험을 하기로 한다. 기자들이 자주 기웃거리는 위키피디아의 모리스 자르 페이지를 조금 바꾸는 것이었다. 마감시간에 쫓긴 나머지 위키피디어로 넘어온 기자를 찾아내는 게 그가 노리던 바였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던 셈이다. 아래가 바로 그가 위키피디아에 삽입한 문구로서 모리스 자르가 생전에 했던 말이다. 물론 모리스 자르는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없고 Shane이 지어낸 말이다. 죽은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도의적으로 걱정하여 그의 명예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작성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내 인생 자체가 하나의 긴 영화 음악이었노라고 얘기할지 모른다. 음악은 내 인생이자 삶의 활력소였으며, 내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사람들은 나를 음악으로써 기억할 것이다.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내 머릿속에서는 나만이 들을 수 있는 최후의 왈츠가 연주되리라.
One could say my life itself has been one long soundtrack. Music was my life, music brought me to life, and music is how I will be remembered long after I leave this life. When I die there will be a final waltz playing in my head and that only I can hear.

원래 처음에 그가 입력한 건 이보다 더 길었지만, 출처가 분명치 않다고 여긴 여러 위키피디아 사용자들이 의심했고 누군가가 삭제하자 Shane은 다시 삽입. 이렇게 두 번을 반복한 다음 마지막 세 번째 삽입했던 게 바로 위 문구로서 이후 약 25시간 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이것을 가디언, 인디펜던트, BBC 매거진 등 여러 언론사가 그대로 인용해 써먹은 것이다. (위키피디아 현재 페이지, 변경 내력 페이지)

이 사실은 한 달이 지나도록 알려지지 않다가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은 Shane이 피해(?)를 당한 각 언론사에 연락해서 사과했다고 한다. 처음엔 기껏해야 게시판이나 블로거 정도가 속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주류 언론이 속아 넘어갈 줄은 몰랐다면서 신문사에 직접 알려주지 않으면 그들이 영원히 모를 것 같아 이메일을 보냈다는 것이다.

확인해보니 그 문구는 각 언론사 웹사이트에서 삭제되고 없었다. 하지만 'cache'라는 좋은 기능이 있지 않든가. : ) 아래가 바로 그 증거다.

BBC 매거진
BBC 매거진 원래 기사

Independent
Independent 원래 기사

잘못에 대한 아무런 시인도 없이 삭제한 위 언론사와는 달리 가디언은 부고 기사 맨 아래 잘못을 인정한다는 기록을 남겨놓았다. 잘못해놓고 그런 적이 없는 척하는 사람과 자신이 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 누가 더 책임감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영국, 호주, 인도 등 위키피디아를 인용한 곳은 모두 영국이거나 영국과 깊이 관련있는 나라들이다. 혹시 이들 나라에서 일하는 기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업무량이 더 많은 것일까? 하긴 우리나라 일부 기자들은 기사 소재를 블로그에서 찾아 출처도 밝히지 않고 마치 자신이 열심히 조사해 쓴 것인 양 베껴 쓰다시피 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줄로 안다. 이 자리를 빌려 혹시나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를 기자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다. 블로그 글을 인용하려거든 그 블로거에게 연락을 취하거나 마감시간에 쫓겨 그마저 부득이하다면, 기사에 블로거 이름과 블로그 주소 정도는 넣어주고 사후 연락을 취하는 게 옳은 방법일 것이다.

외국 기사를 가져다 번역한 우리나라 기자는 없을까 검색해보다 한국보험신문에서 Shane이 쓴 문구가 삽입된 이 기사를 찾았다. 시간상으로 볼 때 위키피디아에서 따온 게 아니라 외국 기사를 보고 인용한 것 같다. 칼럼을 연재하시는 분처럼 보이던데 이 글 보신다면 어서 삭제하시길. 하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저분께 이메일이라도 보내야겠다. (UPDATE 2009.5.7, 오후 6:49) 기사 아래 이메일 링크가 있어 그곳으로 보내면 되는 줄 알았더니 링크가 이상하다. 연락 실패.


Source: Irish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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